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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나를 사진으로 이끈 사진들

 내 아버지는 진정한 사진 매니아시다. 지금도 나는 고향집에 내려갈 때마다 광주리에 한가득 담겨있는 아버지의 필름사진들을 보곤한다. 집 구석에 있는 서재로 들어가 아버지의 사진 광주리를 여는 순간, 손때묻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끝까지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광주리에는 40여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 아버지의 고교시절, 군시절 사진, 엄빠님 20대시절 데이트 순간들을 담은 사진, 가족사진 및 각종 행사 사진들까지, 그 사진 광주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일련의 사서로서 다가온다. 

 광주리 사진들의 99%는 인물사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께선 참으로 인물사진을 좋아하신 듯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신께서 찍어주신 내 사진들을 볼때면 '내가 어렸을땐 이렇게 생겼었구나' '저땐 저런 일도 있었구나' 등등 단순 과거회상에 그쳤을 뿐이었는데, 요즘엔 수십년 된 사진들을 통해 잊혀져가는, 혹은 이미 잊어버린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음에, 그리고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주신 아버지께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무렵, '디지털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아버지께서도 소위 '똑딱이'라 불리는 카메라를 한 대 영입하셨고, 2005년에는 니콘 전설의 바디 중 하나라고 불리는 d70s를 들이셨다. 그 무렵 아버지께서 일본에 출장가셔서 af 80-400 vr 렌즈를 몰래 구입해 오시고는 어머니께 들켜 집안이 한바탕 뒤집혔던 기억이 난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나는 자연스레 '사진'이라는 것에 익숙하고도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관심?' 정도에서 그쳤을 뿐, 사진은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월, 북미대륙 여행을 통해서였다. 여행 출발을 며칠 앞두고 문득 멋있는 여행 사진들을 남겨오고 싶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d70s와 '아빠번들'이라 불리는 af18-70 렌즈를 빌리게 되었고, 부랴부랴 인터넷에 '사진 잘 찍는법'이란 키워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진을 RAW파일로 담아올 것', '가벼운 삼각대를 하나 챙길 것', '생각하면서 셔터를 누를 것'이라는 나름의 원칙 아닌 원칙을 세우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하면서 '셔속' '조리개' '감도'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개념이 잡혀가기 시작했고, 그냥 오토모드에 두고 찍으면 만사 오케이인줄 알았던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을 왜 RAW로 찍어야 하는지 알게해준 사진, 카메라 액정 두 아이들이 저어어어언혀 보이지 않았으나 컴퓨터로 옮겨 ViewNX를 이용, 노출만 조금 올려주니 사진에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담은 뉴욕의 야경, 이 사진을 담으면서 셔속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


 사진 하단의 까만 점을 보고는 이게 뭘까 계속 궁금해 하다가 센서에 끼인 먼지라는 것을 알게 됨, 디지털 카메라의 작동 원리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가 된 사진


 3주가량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로 나는 본격적으로 사진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돈을 모으고 또 모아 니콘 D700과 50.4D, 85.4D 렌즈를 마련하였다. 아, 웃기지만 앞선 말을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진'에 빠졌다기보다 '피사체를 담아내는 셔터와 조리개 등의 일련의 상관관계'에 빠졌다는 말이 적당하겠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을 카메라 셔터와 조리개의 조작을 통해 내가 원하는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청한 채로 노출을 길게 주어 빛이 지나간 궤적을 담아볼 수도 있


조리개를 팍팍팍 가차없이 열어 인물만 부각시키고 배경을 날려버리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할머니와 아버지, 아버지가 처음으로 좋다고 인정해주신 내사진, 지금은 고향집 오디오 위 액자에 걸려있다. 


 이제는 나만의 새로운 사진 광주리를 만들고자 한다. 먼 훗날 내 자식들도 그 광주리를 열어보고 순간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면야 더 이상 바랄것이 없겠다. 순간을 프레임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 꺼내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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